가끔 공원의 잔디밭에 앉아 있으면, 제자들이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깔고 앉을 걸 드릴 게요. 땅은 더러워요.”
제가 말하죠.
“이렇게 깨끗한 잔디가 어찌 더럽겠 느냐?”
그러면 제자들은 말합니다.
“안 돼요, 안 돼요. 그냥 더러워요.”
해변에 가도 같은 말을 합니다.
“스승님, 깔고 앉을 걸 드릴 게요. 모래는 더러워요.”
제가 묻습니다.
“모래 위에 뭐가 있다고? 뭐가 그렇게 더럽다는 거냐?”
그러면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아무튼 그냥 더러워요.”
사람은 피곤할 때 자연스럽게 흙이나 모래, 또는 물이 있는 자연 환경에 가서 앉고 싶어합니다. 그런 곳에 앉고 싶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 몸이 그곳에 있는 어떤 영양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량 원소와 인연의 조화
세상의 물질은 놀랍도록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이 여러 미량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미량 원소는 미생물이나 세균보다도 훨씬 작은 단위로,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양한 인연에 따라 결합하여 서로 다른 사람, 사물, 자연을 형성합니다.
채소, 곡식, 그리고 다양한 물질은 각각 고유한 미량 원소를 흡수합니다. 예를 들어, 딱딱한 껍질을 가진 호두가 흡수하는 에너지는 포도가 흡수하는 에너지와 다릅니다. 이처럼 자연의 조화로운 법칙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우리 몸이 그 음식에 포함된 특정 원소를 필요로 한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고급 자동차의 계기판에는 차량 고장을 알리는 시스템이 있어 회로나 조명과 같은 특정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표시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에도 자연적인 감지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뇌는 마치 대형 공장의 메인 컴퓨터처럼 몸 상태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조율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음식을 먹고 싶다고 느낄 때, 이는 몸의 감지 시스템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위해 신호를 보낸 결과일 수 있습니다. 오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몸이 오이에 포함된 특정 원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배고픔을 느낄 때 대부분 위의 신경이 뇌로 신호를 보내지만, 때로는 위를 거치지 않고도 뇌가 배고픔을 인식하기도 합니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청량하고 촉촉한 음식을,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는 구운 음식을 선호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은 환경과 상황에 맞게 필요를 조율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름이 되면 시원하고 산뜻한 옷이 입고 싶은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리가 특정 음식, 스타일, 색상, 재질의 옷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은 곧 우리 몸이 그러한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감지 능력과 종합적 조율 능력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인간의 몸은 정말로 완벽하고 경이로운 시스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한 과학자가 아프리카 대초원의 보호구역을 관찰한 결과, 그곳의 동물들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화산은 2~3년에 한 번씩 연기를 내뿜으며, 뜨겁고 짙은 화산재가 초원에 떨어져 풀을 태우곤 합니다. 이후 새롭게 자라나는 풀은 화산재에 포함된 미량 원소 덕분에 영양이 풍부해집니다. 근처의 소와 양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몰려와 이 풀을 먹으며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소, 당나귀, 말과 같은 동물들은 육체적 피로를 느낄 때 종종 땅에서 뒹굴며 털을 털고, 울음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행위입니다. 동물들이 뒹굴 때 척추를 땅에 밀착시키고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 척추가 늘어나고 근육이 이완되며, 피부까지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충전”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흙과 모래, 땅의 자연적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목욕하며 느끼는 편안함과 비슷합니다. 피로와 짜증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는 순간을 동물들도 땅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섭취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도 충전의 일종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풀도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음식은? 나무나 돌은?”이라는 질문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물질은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 또한 자연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진흙 웅덩이에서 뛰어놀며 얼굴에 진흙을 바르거나 땅 위에서 게임을 하는 것은 자연과 접촉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모래사장을 걷는 것은 모래의 에너지를 느끼기 위함이고, 바닷물을 밟는 것은 바닷물의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행위입니다. 흙이 옷이나 손에 묻는 것은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영양소를 접촉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긍정적인 행동입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가까워집니다. 그들은 땅에서 뒹굴며 놀면서 질병을 배출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입니다. 흙과 진흙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진흙놀이를 하며 자연의 영양 성분을 흡수하면 면역력이 강화되고 건강한 성장을 돕습니다.
옛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진흙놀이를 권장했습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 진흙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신분과 체면을 의식해 흙과 자연과의 접촉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흙이나 자연 물질이 묻으면 즉시 씻어내려는 습관은 자연과의 단절을 초래하며, 이로 인해 면역체계가 약화되어 알레르기 체질로 변하기 쉽습니다.
자연과의 접촉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만물의 상생과 변화
세상 만물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서로 일정한 연관성을 가지며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다큐멘터리에서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새들은 높은 산의 절벽에서 광물질을 섭취하며 살아갑니다. 그곳에는 식물이 거의 없고, 오직 광물질만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새들이 인(P), 칼슘(Ca), 칼륨(K)과 같은 광물질을 섭취해야만 체력이 유지되고 깃털이 더 아름답게 유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깃털이 화려한 색을 띠고 있을 때, 이는 새의 생명력이 왕성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체력이 부족해 광물질을 섭취하지 못하면 깃털의 색은 빠르게 바래고 회색으로 변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의사는 집에서 닭 다섯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을 매우 깨끗하게 유지하고 닭에게 곡물만 먹였는데, 3개월 후 닭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환경에는 흙이나 모래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닭들은 본능적으로 외쳤을 것입니다. “흙이 필요해요! 모래가 필요해요! 광물질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그러나 그는 수의사가 아니었기에 닭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사실 닭은 모래를 통해 광물질을 섭취하며, 닭이 낳는 알껍데기는 닭의 체내가 아닌, 닭이 섭취한 광물질로 만들어집니다.
자연계에서는 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태양빛은 지상의 전기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고, 공기 중의 물은 기체와 액체 상태를 오가며 순환됩니다. 사람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질병 또한 상호 전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 건강과 정신, 그리고 삶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명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개념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가르침은 물질과 비물질 간의 전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물질은 기체로 전환될 수 있고, 기체는 다시 물질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정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감정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공(空) 속에서 묘한 존재가 드러나고, 모든 일에는 일정한 형태가 없으며, 사람에게도 영원함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 생겨나고 서로 변하는 법입니다.
인체의 질병도 같은 원리를 따릅니다. 격노한 후에 종양이 생기는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화(火)”가 몸속에서 실체를 이루고 “덩어리”로 전환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쁨을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면, 이러한 “덩어리”는 다시 작아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적절한 에너지의 가피를 받고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 질병의 원인 자체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전혀 분노를 느끼지 않으면, 질병의 마지막 흔적마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선명상은 청정하고 자재한 상태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는 방법입니다. 선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더 지혜롭고, 더 행복하며,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초월하여 실체와 허공 속에서 상생하고 변화하는 법칙을 이해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선조와 조사님이 전해준 방법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며, 더 풍요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