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에는 가장 수승하고도 성스러운 순간이 담겨 있습니다. 2012년 3월 3일, 수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건강을 되찾은 기쁨과 마치 마른 나무에 다시 새 생명이 움트는 듯한 기적의 순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날, 찬란한 칠색 유리광이 세상을 감싸는 가운데, 진푸티 종사께서는 가장 자비로운 가피의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그곳에는 맑은 청정함만이 있고, 근심과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고통도, 번뇌도, 가난도, 슬픔도 사라졌습니다. 인연이 닿아 이 지극히 수승한 영상을 시청하신 모든 분들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깊이 정화되는 축복을 얻고, 한 생의 업장을 덜어내어 삶이 한 단계 크게 승화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진푸티 종사 경쇠 소리)

“좋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대중 :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인연 있는 많은 분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고 변화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제가 꿈에라도 바라던 일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믿고, 자비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꿈꾸는 소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연 따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몸에서 마음으로, 다시 영혼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내면의 교감과 소통을 통해 마침내 자신을 승화시키고 한 단계 더 높아지는 것, 그것은 참으로 수승한 인연입니다. ‘수승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함과 장엄함, 그리고 깊은 인연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더 나아지고, 더 많은 행복과 지혜를 얻으려면 방법은 의외로 아주 단순합니다. 이런 법회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하는 모든 과정을 공경하는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려는 그 한 생각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보십시오. 집안일과 직장, 사업과 인간관계 속에서 쌓였던 수많은 걱정과 압박을 잠시 저 멀리 흘려보내는 겁니다.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오며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요? 또 무엇을 잃어왔을까요? 사람은 작은 이익 하나에도 기뻐하지만, 정작 자신이 잃는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막막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지나갑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쩌면 그렇게 일어나도록 정해져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일 또한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삶 속의 크고 작은 고난과 굴곡은 누구도 완전히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수연자재(隨緣自在)’를 배워야 합니다. 인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마음만은 자유롭고 평안한 경지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 제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 역시 깊은 인연입니다. 어쩌면 그 인연은 여러분을 괴로움과 번뇌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고, 마침내 청정하고 자유로운 삶의 경지로 이끌기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을 그 ‘청정함’과 ‘대자재’의 세계로 함께 이끌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마치 동방유리세계에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입니다. 맑고 깨끗하여 근심도 두려움도 없고, 고통도 번뇌도 없으며, 기쁨과 슬픔조차 집착으로 남지 않습니다. 가난도 없고, 얻음도 잃음도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배고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 모두가 그 세계 안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바람처럼, 빛처럼, 거대한 에너지의 장(場)처럼 퍼져 나오는 힘은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조용히 감싸 안고 오래된 번뇌와 상처, 병고와 탁한 기운들을 하나씩 씻어내 모두가 점차 맑고 환하게 변화해 갑니다. 육신의 무거움은 사라지고, 몸은 텅 빈 듯 가벼워져서, 마침내 맑고 고요하지만, 흩어지지 않는 공기처럼, 청정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갑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동방 극락 세계 안에 있습니다. 수많은, 높은 법좌 위에서 저의 손이 보입니다.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법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고통과 번뇌는 저의 세계 안에서 씻겨지고, 그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며, 마침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실현합니다. 모든 천신들이여, 부디 저를 도와 모든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도와주소서.

(경쇠 소리)

옴—– 옴—– 옴—–

모든 생명이 소멸합니다. 번뇌와 즐거움도 사라집니다. 가루가 되고 공기가 됩니다.

(경쇠 소리)

마—- 하—- (다라니 염송)

부처님, 인연 있는 중생이 다시 돌아오게 하십시오. 그들은 근심 걱정도 없고, 아픔도 즐거움도 없으며, 슬픔도 즐거움도 없고, 청정하고 자재하며,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으며, 위도 아래도 없고, 좌도 우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다시 살아납니다.

(경쇠 소리)

(가피)

모든 고통이 사라집니다. 제가 경쇠를 두드릴 때마다 인연 있는 모든 중생이 고해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을 얻고 더는 괴롭지 않습니다. 저의 노랫소리가 모든 신을 불러 여러분을 도와 재난을 없애고 모든 고통을 없애며 원만한 인생의 즐거움을 얻기 바랍니다.

인연 닿은 모든 분은 지혜가 활짝 열리고, 하는 일마다 원만히 이루어져 더없이 큰 배움과 깨달음을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중생은 저의 음성을 듣고 영원히 고해에서 벗어나 다시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중생은 과거와 현재에 지어온 악업과 인과를 저의 간절한 기도와 진심 어린 발원 안에서 용서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상처받았던 모든 생명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고통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순간, 우리 자신 또한 해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세상 가득 비추어 모든 악업의 인연 속에 있는 중생들까지도 동방유리세계에 왕생하여 더 이상 괴로움과 윤회의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중생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여 끝없는 지혜를 얻고, 몸과 마음이 온전해지며, 건강과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들이 학업을 성취하고 넓고 깊은 지혜를 갖추기를 바랍니다.

모든 수행자들이 수행의 길 위에서 참된 지혜와 해탈을 얻고, 마침내 수행을 원만히 이루어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귀도의 중생들까지도 저의 음성과 이름을 듣고, 저의 법상을 보는 순간 괴로움에서 벗어나 지옥의 고통을 떠나 순간적으로 동방유리세계에 왕생하여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영원한 평안과 청정을 누리며 불생불멸의 경지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중생 가운데 마음속에 소망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원이 원만히 이루어지고 삶의 이상을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자비란 모든 중생이 고해(苦海)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도록 이끄는 데 있습니다. 행복과 건강, 지혜와 복덕이 충만하고, 삶 자체가 원만하게 꽃피는 것, 그것이 바로 자비의 길입니다.

모든 중생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 참회하고, 오늘 이 순간부터 스스로를 바꾸려 한다면 부처님의 광명 아래에서, 진실한 기도와 천신들의 도움 속에서 원한은 화해로 바뀌고, 죄업은 덕으로 전환되며, 마침내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삶에서 가장 간절히 바라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중생들은 과거의 업력과 악업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업은 때로는 삶의 고통이 되고, 때로는 대대로 이어지는 상처와 불완전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자비의 가피를 드리고고자 합니다.

(진푸티 종사 죽비를 내리치신다)

저는 과거에 악업을 짓고 죄를 지었던 모든 이들을 대신해 그 업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자 합니다. 또한 그로 인해 상처받고 원한 맺힌 존재들, 오랜 세월 얽혀 있던 원친채주들까지도 모두 동방유리세계에 왕생하여 영원한 평안과 청정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 악업의 인연이 사라지면 서로를 얽매어 왔던 업의 사슬 또한 자연히 끊어질 것입니다.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으며, 서로를 괴롭히는 인연 속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 과거의 업으로 인해 괴로움을 안고 살아온 존재들이 모두 해탈하여 청정하고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들을 대신해 이 업의 책임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이 죽비는 단순한 형벌의 도구가 아닙니다. 중생의 업장을 걷어내고, 깊은 고통과 어둠을 깨뜨려 없애는 자비의 법도(法刀)입니다. 이 죽비 소리를 듣는 모든 이는 한 생의 죄업이 씻겨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진푸티 종사 죽비를 내리치신다)

지금 제 눈앞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중생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삼계의 중생들이 안개처럼 떠돌며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홀로 방황하는 존재들도 있고, 무리를 이루어 다가오는 존재들도 있는데 그 수는 이루 다 셀 수조차 없습니다.

(진푸티 종사 죽비를 계속 내리치신다)

모든 인연 있는 중생들이 넓고 깊은 마음으로 타인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번뇌와 고통에도 저마다의 인연과 인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유정과 무정의 중생이 이제는 용서와 관용의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더 이상 원한을 쌓지 말며, 더 이상 서로를 탓하고 미워하지 마십시오. 부디… 용서하십시오.

저는 지금 저와 인연 있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참회하고 있습니다. 업장을 녹이고, 원망의 매듭을 풀고 있습니다. 이 죽비를 제 손에 내리치는 것은 인연 있는 모든 이를 대신해 제가 그 벌과 고통을 감당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모든 중생들이 마음 깊은 곳에 쌓인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천국과 지옥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자비롭고 넓은 마음, 용서하고 품어주는 마음은 곧 천국의 문을 열어줍니다. 하지만 끝없이 따지고 집착하는 마음,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지옥으로 이끌게 됩니다. 여러분은 부디 천국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데야타 옴 베칸제 베칸제 마하베칸제 라자 사무 가테 소하

(진푸티 종사 죽비를 치며 약사여래 심주를 염송하신다)

이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합시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인연에서 비롯되며, 동시에 무지에서 비롯된 아픔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든, 그 또한 상대의 어리석음 때문이었거나 혹은 우리 자신의 인연 속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처님 앞에서 그 모든 원망과 아픔을 내려놓고 조용히 용서합시다.

(대중 흐느낌)

진푸티 종사: 이제부터 우리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질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은 너무도 쉽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한 노인을 상처 입히려 할 때 그분이 나의 아버지라 생각한다면 과연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한 어머니를 아프게 하려 할 때 그분이 나의 어머니라 생각한다면 차마 모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젊은이를 마주할 때 그가 나의 형제자매라 여긴다면 우리는 쉽게 상처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라면 더욱 따뜻하게 이끌어주고, 바르게 가르치며,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진푸티 종사 죽비를 계속 내리치신다)

우리의 모든 질병과 고통, 그리고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의 근원은 결국 ‘미움’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인연 있는 모든 중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부터는 더 이상 질투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보다 더 잘되고, 더 행복해 보일 때 시기하는 대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배울 점이 있다면 겸손히 배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디 모든 중생과 모든 사람들이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용서할 줄 아는 마음, 진실하게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진정 해탈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병고와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우리 자녀들이 더욱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더 이상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넓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삶의 모든 인연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타인을 탓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이 지은 인연 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풀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미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원한다면 이제 저를 따라 함께 발원해보십시오. “나는 더 이상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복수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보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질투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중생을 사랑합니다. 나는 부모를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곧 나의 부모이며, 천하의 모든 중생은 나의 가족입니다. 나는 가장 자비롭습니다. 나는 가장 부드럽습니다. 나는 자비로 세상을 품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바다와 같아 세상의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마음이 부처님과 같습니다. 나는 외모가 부처님과 같습니다. 나는 가장 자비롭습니다. 나는 가장 너그럽습니다. 나는 가장 지혜롭습니다. 나는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적까지도 사랑합니다. 그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다시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길상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는 가장 자신 있습니다. 나는 가장 너그럽습니다. 나는 가장 지혜롭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나는 미소로 세상을 밝히겠습니다.”

(진푸티 종사께서 한 구절을 읊으시면, 대중이 따라 읊는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지금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가장 따뜻한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안아주세요. 가능하다면 최소 10명은 따뜻하게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 묵묵히 함께해온 스태프들까지도 그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최소 10명을 안아주었다면, 이제는 여러분이 용서해야 할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마음속에 오래 응어리로 남아 있던 사람, 생각만 해도 괴로웠던 그 사람까지도 부처님과 같은 자비롭고 넓은 마음으로 품어보십시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길입니다.

(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포옹한다)

좋습니다. 이제 모두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여러분의 얼굴에 번지는 환한 미소를 보니 제 마음 또한 참으로 기쁩니다. 도반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인연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기 바랍니다.

(경쇠 소리)

우리가 진정 자비를 배우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용서’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관용이 생기고, 마음은 더욱 넓어지며, 타인을 향한 배려와 사랑도 자연스럽게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는 피가 흐르는 생명만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식물처럼 눈에 보이는 피가 없다고 해서 생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분별심은 늘 보이는 것만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수행은 보이지 않는 생명까지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돌에는 생명이 없을까요? 부처님께서는 “태어남이 있는 것은 반드시 사라짐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돌 또한 생성되는 순간이 있고, 언젠가는 부서지고 사라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일상 속 작은 물건들까지도 아끼고 존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냄비와 그릇, 책상과 의자, 침대와 집, 머리를 빗는 빗과 손에 쥔 휴대전화까지도 모두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물질에 집착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끼는 마음’ 자체가 곧 존중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존중이란 생명과 생명 사이의 예의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물건 하나조차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사람 또한 더욱 깊이 존중하게 됩니다.

부모는 누구보다 자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아이를 대할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마치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의 관계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상처받고 오해하게 됩니다. 저는 많은 젊은 수행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 깊은 응어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부모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충분히 따뜻하고 섬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종종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외로움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속에 온기와 배려가 조금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존중해 줘야 합니다. 내가 낳고 키운 자녀라도 그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낳을 권리가 있다면 사랑할 책임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반드시 평등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 모든 중생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평등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말투 또한 자연스럽게 부드럽고 따뜻해집니다. 그러면 아이 역시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게 됩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존중과 평등의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비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조금 전 피와 살이 있는 생명뿐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과 사물까지도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더 높은 수행의 경지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과거에 나를 괴롭히고, 고통과 번뇌를 안겨주고,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긴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의 무지함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왜 그는 우리를 아프게 했을까요? 주먹다짐을 한 두 아이가 설명한 이유에서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샤오산아, 너는 왜 왕샤오얼을 때렸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죠. “그 애가 먼저 저를 욕했어요. 그래서 때렸어요.”

바로 그겁니다. 상처는 아무 이유 없이 생기지 않습니다. 욕을 들었기 때문에 때렸고, 맞은 사람은 또 분노와 원망 속에서 복수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갈등은 작은 원인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작은 악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 한마디쯤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험담을 하거나, 남을 깎아내리고, 비방하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처를 주는 일들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험담처럼 시작되었지만, 마침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이 짓는 업은 그만큼 큽니다. 살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시작은, 때로는 아주 가벼운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래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끊임없이 설법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삶의 고통과 번뇌를 해결하는 가장 진실한 지혜입니다. “작은 악이라도 행하지 말라.” 그것이 나쁜 일임을 알았다면 반드시 자신의 입과 행동을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어디까지 번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자비심입니다. ‘이 말이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그 마음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삼가야 합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 상처 주는 말, 험담하는 말, 남을 중상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말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공경의 말,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존중받는 느낌은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러니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 내어주는 것이 결국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자비를 베풀면 자비의 사랑이 돌아오고, 상처를 주으면 결국 상처와 원망이 돌아옵니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은 결국 자신 또한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풀 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그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베풀 때 오히려 더 큰 복과 기쁨이 우리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의 뿌리도 결국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삶 속의 수많은 고통과 번뇌, 가난과 실패, 반복되는 좌절과 이혼, 사업의 실패와 상처들 역시 마음과 업의 인연 속에서 이어집니다. 부모는 자녀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랍니다. 잘 먹고, 잘 배우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할까요? 왜 어떤 사람은 늘 실패를 반복할까요? 왜 열심히 살아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까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인과와 업력의 흐름으로 이해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업으로 인해 이번 생에서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행과 덕을 쌓지 못하고, 과거에 남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면 그 과보는 결국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전생에 누군가를 속여 자산을 잃게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갔다면, 이번 생에서 쉽게 재물을 얻지 못하는 것도 인과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은 현재의 행동뿐 아니라 과거의 인연과 업까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실직을 반복할까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 업의 흐름 속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인생은 단순히 눈앞의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인연의 세계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평생 자신의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꿈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부는 어느덧 마흔을 지나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10여년 전부터 집을 사려고 애썼지만, 지금까지 사지 못하고 전셋집과 월셋집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셋방살이는 그야말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집주인의 기분이 조금만 상해도 언제든 나가달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그렇게 십여 년 동안 열 번 넘게 이사를 반복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참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제는 꼭 우리 집을 마련하자” 하고 마음먹었지만, 이상하게도 집과의 인연이 번번이 어긋났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은 가격이 너무 비쌌고, 조건도 맞고 가격도 괜찮다 싶으면, 계약금을 넣으려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버렸습니다. 어렵게 정말 좋은 집을 만났다 싶으면, 이번에는 집주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집을 사려고 하면, 늘 마지막 순간에 일이 틀어졌습니다. 결국, 어느 날, 그는 저를 찾아와 간절히 물었습니다. “상사님, 왜 저희는 집을 사려고만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돈도 어렵게 준비했는데 늘 이렇게 어긋납니다…” 물론 그 부부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가 제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제 눈앞에 한 장면이 선명하게 펼쳐졌습니다. 예전에 제가 이야기한 적 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땅속 굴에 살던 작은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토끼 같기도 하고, 큰 들쥐 같기도 한 생명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생에서인가 그런 동물을 잡는 사냥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물들이 굴속으로 숨어들면, 그는 물을 부어 굴을 잠기게 했습니다. 수많은 작은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번은 그가 물을 굴에 부어 넣은 물이, 굴속으로 차오르자, 어미 동물이 필사적으로 새끼들을 물고 밖으로 나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그 작은 생명들은 모두 물에 잠겨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업장 때문에 그는 이생에서 집을 사려고 할 때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있죠. 제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장면이 아주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스러져버린 생명들이 그를 원망하지 않을까요? 이유 없는 미움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빼앗은 원한입니다. 이번 생에서 그 원한이 그가 집과 인연이 닿지 않도록 작용력을 발휘한 겁니다. 눈앞에 돈이 있어도 재물이 모이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집도 끝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머물던 집의 집주인들조차 늘 그를 불편하게 하고 내쫓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어린 생명들의 안식처를 무너뜨린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업의 영향이 후손에게까지 이어져 자녀들의 지능이 떨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과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전생의 일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저를 찾아와 물었을 때 그 장면은 제 눈앞에 너무도 분명하게 펼쳐졌습니다. 그는 단순히 제가 법력으로 무언가를 해주면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가 상처 입혔던 생명들을 천도하고, 억울함과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밤늦도록 기도했습니다. 원망과 악연을 풀고 그 생명들을 돕기 위해 오랜 시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반년 정도 지나자 마침내 그는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과의 관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어집니다. 전생에 지은 업은 이번 생으로 이어지고, 이번 생의 행위는 다시 다음 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삶 속의 질병과 고통, 상처와 실패, 사랑과 인간관계의 아픔까지도 모두 인연과 인과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작은 악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소한 험담 한마디라도 결코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그 업의 결과는 반드시 생겨납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어도 햇빛 아래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단지 경계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삶을 바꾸는 길도 함께 알려주셨습니다. “작은 선이라도 행하기를 멈추지 말라.” 사소한 선행이라고 해서 “이 정도쯤이야 의미 없겠지” 하며 지나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작은 선행이 쌓이면 사람은 점차 선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혜로운 사람, 복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니 작은 선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면 인생은 결국 바뀝니다. 우리 삶은 전생의 업력과 인과 속에서 이어지지만, 이번 생에서 진심으로 참회하고, 선행을 베풀고, 현명한 스승을 만나 수행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삶은 반드시 바뀝니다. 몸의 병고가 바뀌고, 사랑과 혼인이 바뀌고, 일과 사업의 흐름이 바뀌며, 자녀의 미래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분을 그 청정한 시공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저는 마치 그 세계 안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분명 여러분에게도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가볍게 몸을 움직여 보십시오. 천천히 흔들어보고, 편안하게 자신의 몸을 느껴보십시오. 우리 안에 깊이 남아 있던 업의 뿌리, 질병의 근원이 조금씩 옅어지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 오랫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병이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음속 깊은 원망과 업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 지혜가 갑자기 밝게 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배우고, 자비의 길을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인연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사흘만 지나도 다시 보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수행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짧은 시간 안에도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리석고 답답하게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마음이 열리고 진정한 자비심이 일어나면 지혜와 해탈의 빛을 만나 우리 안에 쌓여 있던 업력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스승님의 가피가 더해지고, 선한 에너지가 함께 모이면 막혀 있던 지혜의 통로가 열려, 그동안 가로막고 있던 어둠과 장애가 걷히고 사람은 놀랄 만큼 빠르게 변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앓아온 병이 순식간에 가벼워지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던 병마조차 찰나 사이에 사라지는 기적 같은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앓아온 병이 순식간에 가벼워지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던 병마조차 찰나 사이에 사라지는 기적 같은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리와 어깨, 목의 통증으로 괴로워하던 분들이 지금은 몸이 훨씬 편안해졌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십시오. 허리를 가볍게 돌려보고, 몸의 변화를 스스로 느껴보십시오. 필요하다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여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죽비를 내리치며 제 손이 아픔을 느낄 정도였으니 여러분도 분명 효과를 보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몸을 느껴보십시오. 어떤 분은 두통이 사라졌을 것이고, 어떤 분은 답답하던 속이 편안할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배의 묵직한 통증이나 더부룩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께 조금 더 힘을 보태겠습니다. 제가 지금 두드리는 이 작은 북소리는 천상의 법고(法鼓)를 상징합니다. 이 소리가 울릴 때마다 여러분의 번뇌 또한 바람처럼 흩어져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타격 소리)

좋습니다. 이제 자신의 몸을 가볍게 두드려 보십시오. 온몸을 부드럽게 두드리다 보면 막혀 있던 기운이 풀리고 몸속의 병기(病氣) 또한 흩어지게 됩니다. 자기 몸을 편안하게 두드려주면 됩니다.

(타격 소리)

(경쇠 소리)

하늘의 천신과 천인들도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천녀(天女)들이 여러분을 도와 몸은 더욱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몸을 두드린 후에는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쓸어내리듯 정리해주십시오. 이렇게 수공하면 몸의 기운이 더욱 편안하게 안정됩니다. 그러면 몸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지고, 부정적인 기운과 좋지 않은 에너지들도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법고의 울림과 맑고 청아한 경쇠 소리가 삿된 기운과 어두운 에너지를 몰아내고, 천신과 보살의 가피와 보호를 불러와 모두의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하고 즐거워집니다. 조금 전 몸이 아프거나 불편했던 분들 중에 지금 한결 좋아졌다고 느끼는 분들이 계신가요?

(대중: 네.) (박수)

몸이 좋아졌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한번 손을 들어보십시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정말 도움을 받았다고 느낀다면 그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믿음과 스승의 발심이 하나가 되는 순간, 그 가피의 힘은 더욱 분명하게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손을 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가피하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증상뿐만 아니라, 병의 뿌리와 원인 자체를 다스려 변화가 더욱 깊고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훗날 이 녹음을 듣고 이 영상을 보는 모든 인연 또한 더 큰 가피를 받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저는 대한민국 부산의 도량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이 자리에 약 10만 명의 중생이 함께 모여 있는 듯 보입니다. 또한 수많은 천신과 보살님들이 여러분을 돕고 있습니다. 저는 본래 제가 속해 있던 천상의 세계로 돌아간 듯, 한 쌍의 손이 아니라 무수한 손으로 여러분을 가피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머리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거대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듯 느껴집니다.

아마 제가 본래의 그 청정한 세계 안으로 다시 돌아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법력과 가피의 힘이 여러분에게 더욱 크고 깊게 전달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대중 : 네.) (박수)

여러분, 믿음이 있습니까? (대중: 있습니다.)

잘 들리지 않습니다. (대중: 있습니다!)

더 크게, 믿음이 있습니까? (대중: 있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그 믿음 하나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복과 가피를 여러분 삶 속으로 불러오게 됩니다.

(대중 : 받았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두 손바닥을 저를 향해 펼쳐 주십시오. 다른 지역이나 해외 도량에 계신 분들은 눈앞의 불상이나 제 사진을 향해 손을 내밀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은 반드시 저와 서로 감응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에너지와 음성, 그리고 제가 머무는 세계의 빛과 기운이 여러분의 몸과 생명 속으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가피) 옴—–

(경쇠 소리)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밝은 기운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마음만 열려 있다면, 반드시 받을 수 있습니다. (대중: 받았습니다.)

(경쇠 소리)

이제 여러분 안의 어두운 기운을 조금 더 걷어내겠습니다. 제 숨결 한 번에도 그 어둠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합장해주십시오.

오늘 오전 법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