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이 현대사회에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선수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행을 배운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요? 선수행은 우리의 생명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보리선수 창시자이신 진푸티 종사께서는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 두 가지 측면에서 선수행의 유익한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혜와 에너지가 수행을 통해 일깨워질 때, 온몸의 모든 세포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며 생명은 달라집니다.」 선수행의 에너지는 어떻게 썩은 고목에도 꽃을 피울까요? 영상을 통해 진푸티 종사께서 쉽고 깊이 있는 말씀으로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선수행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 질문을 합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답들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밴쿠버에서 영어권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분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밖으로는 자연의 법칙을 깊이 이해하는 것

선법을 배우는 첫 번째는 자연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풍수를 알고 있을까요? 잘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 보통은 바닷가에 살지 않았습니다. 옛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겼죠. 왜 그랬을까요? 바닷가는 바람이 세고 습하기 때문입니다. 내륙으로 1킬로미터만 더 들어가도 훨씬 건조해집니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많은 문화의 변화 중에는 잘못된 것도 있습니다. 외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요?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 인연이 있는지 알고 있을까요? 그것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나와 인연이 있어 평생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평생의 적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숙명, 즉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온 운명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타고난 적이 맞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20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서로의 기운과 자기장이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외부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능력과 지능, 시간을 가져야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하물며 사주팔자와 관상은 더 말할 것도 없죠. 단지 바느질을 하고 옷을 만드는 일조차도, 제대로 옷 한 벌을 만들기까지는 30년의 공력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선(禪)’은 밖으로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자연의 이치를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인간 사회의 윤리와 규범도 외적인 영역이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나는 자연에만 순응하면 된다. 인간이 정한 규칙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착각하지만, 인간이 정한 규칙,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고, 빚을 지면 돈을 갚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될까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의 윤리와 규범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의 심리를 우리는 알고 있을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람답게 처신하지 못하며, 일 처리를 잘하지 못할까요? 선(禪)이라는 수행을 통해 우리는 외부 세계를 훨씬 빠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 가지 입니다.

안으로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것

첫 번째는 밖을 향해 바라보며 자연의 법칙과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자신을 이해하고 선수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먼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감각 기능, 즉 지각, 후각, 촉각, 청각 등 몸의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물건을 평가하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는 느낌과 감정도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느낍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평가할 때, 과연 그 관점은 정확할까요? 여러분이 가진 세계관의 높이는 바른 것일까요?

우리는 정신적 경지가 충분히 높지 않고, 더 큰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 서 있지 못하면,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과 판단에 편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편차가 생기면, 우리의 표현과 감정에도 올바르지 않은 부분이 많아집니다. 우리는 가끔 화내지 않아도 될 일에 화를 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결혼한 지 3년이 되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화가 나고 조급해합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또 아이 때문에 화를 냅니다. 아이가 조금 장난꾸러기이면 “이 아이는 말을 안 듣는다”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감정을 일으키고, 번뇌를 가져다주며, 때로는 기쁨을 주는 많은 느낌들이 사실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더 큰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번뇌는 자신의 무지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과거의 기쁨 또한 어제 손을 씻을 때 생긴 비눗방울처럼 허망한 것일 수 있습니다. 비눗방울은 그저 공기 방울일 뿐입니다. 참으로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의 햇빛을 받아 순간적으로 찬란한 빛을 내면, 우리는 마치 보물을 얻은 것처럼 여기고 기뻐합니다. 사람은 참으로 민감하고, 쉽게 흔들리며, 쉽게 느낍니다. 순간의 느낌만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이것 역시 인간 번뇌의 중요한 근원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높이를 알아야 하고, 자신을 알아야 하며, 자신의 내면을 알아야 합니다.

왜 내면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수많은 일 또는 질병은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감정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늘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저는 늘 너무 심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친구가 전혀 없어서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친구가 있을 때, 여러분은 그들을 정말 친구로 대했나요? 오히려 모든 사람을 적처럼 만든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 내면의 정신적 번뇌는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정신적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사실 마음을 조금 더 크게 가져야 합니다. 만약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베풀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만의 감정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점차 세 번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여자친구를 여러 명 사귀라는 뜻이 아닙니다. 친구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더 많이 베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마음의 그릇이 점점 커지고, 번뇌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합니다. 내면이 외적인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개선하고 에너지를 보충하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여러분은 이 이치를 천천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禪)’이라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을 바꾸기 시작하고, 수행할수록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많은 질병은 우리가 평생 그 원인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질병을 치료하려면 보통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몸의 건강과 일해서 돈을 버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즐겁고 즐겁지 않은 것은 돈이 많고 적음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가 가치관과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리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와서 배우고, 수행 시간이 점차 쌓이면 건강상태에는 반드시 변화가 생깁니다. 지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적절한 훈련 방법을 통해 건강은 반드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가 더욱 충만해지고, 두 가지 에너지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긴 질병도 수행을 통해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그만큼 더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친구나 가족과 지낼 때, 여러분은 상대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때는 그렇게 아름답고 멋져 보이던 그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 방귀 냄새가 지독하다고요? 그럴 때는 포용하면 됩니다. 자신 있으면 여러분이 더 지독하게 뀌어서 균형을 맞추면 되죠. (대중 웃음) 이 말이 조금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런 ‘거친’ 면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바른 마음, 바른 생각, 바른 행동으로 번뇌와 업력을 마주하다

우리는 지금 모두 더 나아지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자신이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혹은 원하는 일이 더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 수행을 하더라도 몸에는 여러 가지 반응과 생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행 중에는 많은 감각과 느낌이 생기는데, 어떤 질병은 서서히 변화하며 가벼워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회복되기도 합니다. 또 신체적인 변화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부를 보면, 두 손을 서로 비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피부가 한결 매끄러워집니다. 또 많은 분들이 건성 피부에 속합니다. 손이 한 번도 촉촉해진 적이 없고, 손에 땀이 전혀 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비율이 대략 열 명 중 한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일정 기간 수행을 하고 나면, 길어도 한 달 정도 지나 손과 발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몸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팔과 다리, 손발의 경락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큰 에너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많은 질병이 회복된다는 점입니다.

또 노년층의 미용 문제에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면, 보통 60세가 지난 뒤 많은 분들에게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얼굴이나 팔, 몸에 검버섯이 생기는데,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분들은 3개월 정도 수행하면 검버섯이 옅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검버섯을 없애고, 몸이 점점 좋아지며, 예전의 허리 통증이나 등 통증, 가슴 답답함, 위통 같은 증상까지 좋아졌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계속 수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에너지가 끊임없이 쌓이면서, 결국 인간의 일반적인 사고를 초월하는 하나의 물질처럼 변화하고, 몸의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왜 많은 수행자들이 비범한 지혜를 갖게 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왜 수행을 하다 보면 건강해질까요? 왜 수행을 하다 보면 많은 일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될까요? 왜 수행을 하다 보면 원래 자주 다투던 부부가 덜 다투게 될까요? 다툴 일이 별로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수행을 통해 여러분의 뇌신경이 넓어지고 커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깨알처럼 작은 일도 여러분에게는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마음의 폭이 넓어지면, 누군가가 몇 마디 욕을 해도, 동료들은 모두 월급이 올랐는데 자신만 오르지 않아도, 심지어 상사가 자신을 꾸짖어도 여전히 평온할 수 있습니다. 번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지입니다. 마음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번뇌는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되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고 나면, 우리의 마음이 정말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혜와 에너지가 수행을 통해 깨어날 때, 온몸의 모든 세포가 정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며 생명은 달라집니다.

선수행 — 썩은 고목에도 꽃을 피운다

저는 어릴 때의 제가 마치 썩은 나무토막 같았다고 느낍니다. 지능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으니, 선생님이 저를 어떻게 가르치셨겠습니까? 고향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1 더하기 1은 얼마죠?”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2입니다.” 저도 따라 말했죠. “2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선생님이 저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말해 보세요. 1 더하기 1은 얼마죠?” “모르겠습니다.” “방금 말했잖아요. 얼마라고 했죠?” 저는 잊어버렸습니다.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라고 하시면 그게 답입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한번은 시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아시는 일입니다.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셨고, 저도 집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엄마, 나 시험 봤는데 1등 했어.” “1등?”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쪽에서 세면 1등이니?” “내가 꼴찌니까, 그것도 1등이라고 할 수 있잖아.” 이듬해가 되자 제 지능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엄마, 이번에는 좀 나아졌어. 나 1등 아니야. 40점 맞았어.”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몇 과목인데?” “세 과목.” 한 과목 만점이 100점인데, 제 지혜가 조금 열려서 세 과목을 다 합쳐서 40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얕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를 얕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친구도 얕보지 마십시오. 오늘의 부족함, 오늘의 무능함, 오늘의 나약함, 오늘의 힘없음도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광명 속에서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고, 또 수련을 거친다면, 어쩌면 내일은 불가사의한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놀랍고 위대한 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믿으십시오. 저 자신이 바로 가장 좋은 본보기이자 산 증명입니다.

수행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인연 있는 모든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 마음속 진심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행의 유익한 점을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을 설득하고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과 불법이 저에게 가져다준 도움과 변화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썩은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힘입니다. 인연 있는 모든 분들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 축복을 드립니다!